릴리안 스톤
기자,BBC 워크라이프
2023년 12월 9일
선물철이 되면 ‘받고 싶은 선물’ 상위권에 항상 장난감이 들어간다. 이 장난감들은 어떻게 ‘올해의 꼭 사야하는 품목' 자리를 차지한 것일까?
1996년은 ‘티클 미 엘모(미국의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의 주인공 엘모의 인형 장난감)’가 미국 전역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은 해였다. 마케팅이 놀라우리만큼 크게 성공하 덕에 이 복슬복슬한 봉제 인형은 홀리데이 시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됐다. 하지만 인형 제조사인 ‘타이코’는 수요를 잘못 예측하고, 엘모를 너무 적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장난감 매장에선 한정된 재고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또한 엘모 한 개가 ‘리셀(상품을 구입해뒀다 가격이 올랐을 때 재판매 하는 것)’ 시장에서 70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1996년의 티클 미 엘모 열풍은 마케팅에 성공한 장난감 하나가 홀리데이 쇼핑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그런데 ‘잇’ 장난감은 매년 홀리데이 시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듯하다. 분명 특정한 제품이 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어떤 장난감이 쇼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는 여러 요인들이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들어맞아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
주요 유통업체들이 홀리데이 시즌에 내놓는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52년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가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한 최초의 어린이 장난감이라는 역사를 쓴 이래로 계속돼 왔다. 이 장난감은 출시 첫해에만 100만 개 이상 팔렸다.
오늘날 유통업체들 경쟁하는 장난감 시장은 대단히 치열하다. 그런데 이 시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직접 장난감을 광고할 수 있는 ‘틱톡’이나 ‘로블록스’ 같은 소셜 플랫폼이다. 영국의 트렌드 조사 기관 ‘트렌드바이블’의 CEO 조안나 필리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쇼핑객들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조성하는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필리는 “(정보 전달 통로가 많다보니) 우리 모두 주변에 쏟아지는 뉴스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류는 두 개의 극심한 전쟁에 휘말려 있고, 생계비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현실 속 부정적 문제와 관련된 온갖 요란한 메시지들이 넘쳐나죠. 아이들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신호를 그대로 흡수하게 됩니다.”
필리는 성공적인 브랜드란 이러한 맥락에서 회복탄력성, 즐거움, 감성 지능과 같은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장난감을 만드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장난감 티클 미 엘모는 1996년 난감 매장에서 난투극을 초래할 정도로 큰 인기였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사진 설명,장난감 티클 미 엘모는 1996년 난감 매장에서 난투극을 초래할 정도로 큰 인기였다
1932년에 설립된 덴마크 브랜드 ‘레고’는 장난감 인기 차트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는 브랜드다. BBC 워크라이프가 살펴본 ‘어도비 애널리틱스 데이터’에 따르면, 레고 세트는 올해 사이버 먼데이(미국 추수감사절 연휴 이후 첫 월요일, 미국 최대 온라인 할인 행사가 이날에 진행되곤 한다) 최다 판매 제품군에 들었다. 필리는 이 브랜드의 베스트셀러 제품 중 하나로 ‘레고 플라워 부케’를 꼽았는데, 이 제품을 테그로 단 틱톡 영상들의 조회수는 총 3천만 회가 넘는다.
“자유롭게 놀기”와 “호기심과 실험, 협업”을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로 삼고 있는 레고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필리는 이것이 바로 ‘열성팬을 거느린 브랜드’가 탄생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마리나 키데켈이 2022년에 봉제 장난감 브랜드 ‘휴지말스 월드’를 설립할 때도 큰 역할을 했다. 이 브랜드는 출시 1년 만에 ‘페어런트 매거진’이 꼽은 ‘올해의 장난감 리스트’에 두 번이나 뽑혔다. ‘굿 하우스키핑’과 ‘타임지’ 등 여러 매체도 이 브랜드에 대해 호평했다. 키데켈은 자신의 브랜드가 거둔 초창기 성공은 일부는 전문가들과 협력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휴지말스 월드는 아동 심리학자, 소아과 의사 등 어린이와 성인의 ‘사회적 분위기’를 꿰뚫고 있는 전문가와 협력해 장난감을 만든다.
키데켈은 또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을 담고 있는 장난감에 대해 인증하며 유명해진 ‘메시’도 중요한 지표로 여겼다. 그는 “정서적 요소와 지적 요소가 풍요로운 장난감들이 시장에 다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냥 장난감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떤 풍요로운 요소 또는 상호작용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생산량 투자
쇼핑객의 사회적 분위기를 꿰뚫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급도 잠재적인 히트 장난감의 수익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필리는 “이미 어떤 트렌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그 다음엔 브랜드와 판매업체에게 있어 해당 제품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어떤 기업은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고도 충분히 투자하지 않아서 제품 생산량이 수요를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아이비 경영대학에서 공급망 관리를 가르치는 교수 로버트 오버스트리트는 최근 공급 측면에서 실패한 ‘잇 장난감’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그는 “2019년 ‘베이비 요다’로 인해 디즈니가 약 300만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디즈니는 홀리데이 시즌이 아니라 SF 시리즈 ‘만달로리안’ 공개에 맞춰 이 장난감의 대량 생산 시점을 지연시켰다.
한정 수량으로 인해 베이비 요다의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디즈니의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대규모 불법 복제 상품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는 게 오버스트리트의 설명이다. 물론 생산량을 제한해 장난감의 사회적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잠재적인 수익 손실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브랜드가 결정할 문제다.
‘상상 속 미래’를 향한 노력
궁극적으로 인기 아이템 장난감은 마케팅과 소비자 심리, 적시 생산, 약간의 예지력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디자인과 제조, 샘플링, 재고 보관 등 대부분의 장난감은 수년에 걸쳐 만들어진다. 장난감 디자이너는 필리가 ‘상상 속 미래'라고 부르는 곳에서 환경적 요인부터 교육 트렌드까지 모든 것을 계산하며 장난감을 만들어야 것이다.
필리는 “장난감 디자이너는 이 장난감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선물을 사는 사람 측면에서도 2년 후의 삶이 어떨지 상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예측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몇몇 ‘잇’ 장난감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길이 있다. 이런 길을 걸어온 장난감 중 일부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미국 유통업체 ‘타겟’, 영국 유통업체 ‘아르고’, 업계 간행물 ‘토이 인사이더’가 선정한 2023년 최고의 장난감에서 1위를 차지한 장난감이 있다. 캐나다의 장난감 브랜드 ‘스핀 마스터’의 신제품 ‘비트지 인터랙티브 디지털 펫’이다. 이 장난감은 반지 상자 정도의 크기인데, 상자를 열면 친근한 애완동물의 모습이 디지털 화면에 등장한다.
스핀 마스터 웹사이트에선 이 장난감을 “당신의 사랑과 관심으로 아기 반려동물이 성견, 슈퍼 비트지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뿌리고 있다. 그런데 이 제품은 1996년 일본 장난감 브랜드 ‘반다이’가 출시한 인기 디지털 반려동물 장난감 ‘다마고치’와 유사하다. 이 점 때문에 이제는 부모가 돼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구매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향수를 자극할지도 모른다.
특정 장난감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매년 달라질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와 소셜 미디어, 향수 등이 그 인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속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전 세계 많은 어린이들이 장난감 선물을 기다린다는 사실이다.